탁구소개
종목소개
탁구(卓球)는

2명(단식) 또는 4명(복식)의 선수가 탁구 라켓을 사용해 가볍고 속이 빈 공을 탁구대 위에서 네트 건너편으로 쳐 넘기며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로, 핑퐁(Ping-pong), 테이블 테니스 (Table tennis)라고도 일컫는다.

경기는 중앙에 네트가 설치된 딱딱하고 평평한 탁구대 위에서 이루어진다. 서브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선수들은 자신 쪽 탁구대에 공이 한 번만 튀기게 한 후 이를 쳐내서 상대편 탁구대로 보내야 하며, 이에 실패할 경우 실점한다.

일반적으로 탁구 경기는 속도가 빨라 순발력이 요구된다. 숙련된 선수는 스핀을 통해 공의 궤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해 상대를 공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든다.

탁구 세부 룰 확인하기
탁구 히스토리
  • 출처 : 대한탁구협회
    1880′s
    • 1880
      테니스를 적용하여 임시로 준비한 장비와 함께 식탁에서 즐기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 1887
      영국 출신의 제임스 데보네셔가 처음으로 Table tennis 라는 이름의 임시 특허를 승인 받았으나, 특허를 포기하였습니다.
  • 출처 : 대한탁구협회
    1900’s
    • 1900
      고무와 코르크 공을 대체하기 위한 셀룰로이드 공의 도입 시작했습니다.
    • 1901
      셀룰로이드 공은 완벽하게 튀었고, 게임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 출처 : 대한탁구협회
    1920’s
    • 1922
      국제탁구연맹(ITTF)은 베를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1926
      첫 번째 세계선수권대회가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었고, ITTF 헌법이 채택되었으며, 표준화된 법규 체계가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 출처 : 대한탁구협회
    1950’s
    • 1952
      제 19회 세계선수권대회가 인도 봄베이에서 개최되었으며, 이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대회입니다. 또한 아시아탁구연맹의 창립 및 첫 아시아 탁구 연맹 선수권대회가 열렸습니다.
    • 1958
      제 1회 유럽선수권대회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 출처 :대한탁구협회
    1980’s
    • 1988
      탁구가 처음으로 올림픽에 포함되었고, 이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되었습니다.
  • 출처 : The Ping Pong
    출처 : 대한탁구협회
    2000’s
    • 2000
      시드니 올림픽 이후, 탁구공의 크기가 텔레비전 시청을 향상시키기 위해 40mm로 증가되었습니다.
    • 2001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게임 점수가 21점에서 11점으로 변경되었습니다.
    • 2003
      단체 선수권대회와 개인 선수권대회가 분리되었고, 매년 번갈아 홀수 연도에는 개인전, 짝수 연도에는 단체전으로 개최되기 시작했습니다.
    • 2004
      아테네 올림픽 동안 탁구는 모든 종목 중에서 텔레비전 시청자 5위를 기록하였습니다.
    출처 : 대한탁구협회
    2000’s
    • 2000
      시드니 올림픽 이후, 탁구공의 크기가 텔레비전 시청을 향상시키기 위해 40mm로 증가되었습니다.
    • 2001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게임 점수가 21점에서 11점으로 변경되었습니다.
    • 2003
      단체 선수권대회와 개인 선수권대회가 분리되었고, 매년 번갈아 홀수 연도에는 개인전, 짝수 연도에는 단체전으로 개최되기 시작했습니다.
    • 2004
      아테네 올림픽 동안 탁구는 모든 종목 중에서 텔레비전 시청자 5위를 기록하였습니다.
  • 출처 : 대한탁구협회
    2010′s
    - NOW
    • 2010
      첫 청소년 올림픽 대회에서 탁구가 포함되었습니다.
    • 2016
      플라스틱 공이 세계선수권대회 및 올림픽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 탁구의 역사
출처 : 대한탁구협회

우리나라에 탁구가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로 도입이 된 것인지 문헌상 분명하게 기록된 것은 없다. 다만 국제탁구연맹 편람에는 탁구가 1899년 영국에서 일본으로 보급되었고 1900년대 초 한국/중국/홍콩 등지로 전파되었다고 기술되어 있을 따름이다. 이에 따라 탁구 계에서는 도입경로를 두 가지도 추정하고 있다. 하나는 인접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문물의 교류와 인적왕래가 잦았던 일본어서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도입되었다는 설이며 또 하나의다른 경로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선교사들이 종교전파의 수단으로 탁구를 이용했다는 설이다. 그러나 어느 것도 분명치는 않다.

대한탁구협회에서는 1924년 1월 “경성일일신문사”에서 주최했던 “핑퐁경기대회”를 한국탁구의 효시로 보고 있다. 이 시점을 계기로 탁구는 소수계층의 유희에서 대중적인 스포츠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해의 제2회 대회에는 3백 여명의 남녀선수가 참가. 대성황을 이룬 가운데 한국의 이용렴 선수가 여자부에서 패권을 차지했다.

출처: The Ping Pong

또 1927년에는 조선신궁경기대회에 핑퐁이 경기중목으로 채택되어 권상순이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우리 손으로 열린 첫 대회는 YMCA체육관에서 개최한 제1회 조선탁구대회이다. 한국체육사상 특기할 이 신규행사에서는 장경복 선수가 우승 했고, 경성제국대학이 주최 한 조선학생탁구대회에서는 방인영 선수가 패권을 자치했다.

출처: The Ping Pong

그동안 일본식 연식공을 사용해 왔던 한국탁구는 1936년부터 구미에서 사용하던 경식볼로 전환, 기술개선에 진일보하는 전기를 맞게 된다. 이제 5월 제1의 전조선 경식탁구대회가 개최되어 최근항 선수가 신예로 등장,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최근항 선